08월14일2020년 금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로마서 9:15~33절입니다. 생명의 삶 편집부에서 잡은 제목은 ‘은혜로운 부르심, 믿음을 의지한 의’ 입니다.
25절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달리 말하면 유대인이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고 나머지는 다 이방인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이라고 자각하고 있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또 하나님의 입장에서 선포하신 관점에서 보면 내 백성이라고 아니하셨던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여기시고, 칭하시고, 사랑하지 아니했다라고 느끼고 규정되었던 이들을 사랑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6절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단지 유대인을 향해서만 되어있지 않고 온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27절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주님을 따랐던 이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28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0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절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루지 못하였으니” 32절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실천함으로 의를 의롭다 칭함을 받을 사람은 없죠.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신약 성서의 일관된 관점이지 않습니까.
33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죠.
89쪽 박한수님이 쓰신 ‘내가 구원받은 줄 알았습니다’ 중의 일부가 나와있습니다. 앞부분에는 이재철 목사님이 스위스에서 사역하고 계실때 어느날 고무장갑이 떨어졌는데 어느 성도가 기도 중에 고무장갑을 보내라는 마음의 감동이 있어서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무례를 무릅쓰고 보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작은 불편도 미리 아시고 그것을 딱 채우시는 것을 보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작은 불편도 미리 아시고 그 해결을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하물며 한 영혼에 대한 구원 계획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시겠습니까?’ 여러 교단에서 이해를 조금 달리하는 구원 받은 자와 구원의 실족 가능에 대한 예정설의 차이가 나오는데 이 분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택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구원받았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고, 누구든지 구원에서 실족될 수 있습니다.’
교파나 교단에 따라서 한번 얻은 구원은 절대로 잃을 수 없다고 이해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얻은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다. 구원받았다고 믿었던 자도 그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어떻게 보면 예정설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들려집니다. 그러나 또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구원 받은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는 예수님의 경고, 사도 바울의 경고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신학적인 부분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게 구원은 행위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지는 구원임을 믿는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여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존 웨슬리 같은 경우에는 신학적 논쟁에 답하는 설교도 했지만 구체적으로 실천적 영성, 실천적 성화, 실제적 삶의 변화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갖고 그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었죠. 그러니까 그는 신학적 주제에 대해서 논쟁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삶에 적용해서 신실한 삶, 거룩한 삶, 성화된 삶을, 실재적 삶의 변화, 실재적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 practical theologian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말씀을 신학적인 이해를 할때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면, 율법에 이르는 행위로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을 날마다 날마다 이루어 가고 확증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새 하루를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의를 경험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전세계적으로 pandemic이 아직도 많이 퍼져있습니다. 여러 경제적인 위기들, 건강의 위기들, 수많은 사망자, 확진자 그 가운데 미국은 심각한 숫자들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전세계에 모든 인류 가운데 주님의 긍휼을 하나님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이기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