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15일2020년 금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신명기 18:15~22절입니다. 생명의 삶에서의 제목은 ‘참선지자의 분별 기준, 증험과 성취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15절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8절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여기 ‘나와 같은 선지자’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보통의 해석은 ‘궁극적으로 나와 같은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세가 종으로 충성했다면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성하신 선지자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완성이실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의 원천이십니다.’ 당장 문자적인 해석으로 생각해보면 이 모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 히브리인들을 인도했던 이들은 여호수와 이니까 바로 그 다음에는 여호수와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삶 편집부가 앞(94쪽)에서 얘기한 것처럼 나와 같은 선지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더 합당한 해석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번째, 20절 말씀에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절에서는 선지자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22절에서 답하십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94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가감 없이 대언하고, 그 말씀을 듣는 자는 두려움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자기 생각이나 관점에 따라 내용을 추가,변형,왜곡,생략 한다면 죽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인기에 영합해 대중의 구미에 맞는 말을 거짓으로 교묘하게 꾸며 냅니다. 하지만 참 선지자는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면 정직하게 선포합니다.’
많은 설교자나 대중 연설가들도 받는 유혹이기도 하고 가야될 진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얘기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떻겠습니까. 얼굴이 일그러지고 심한 경우에는 돌멩이도 날아왔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성경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존 웨슬리가 설교 했을때 돌멩이가 날아왔고, 스데반 집사가 설명했을때도 돌멩이가 날아왔고, 그리고 예레미아 같은 선지자가 설교했을때 그를 가두었습니다. 아모스 같은 선지자가 얘기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참선지자들은 그럴지라도 청중의 반응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만 정직하게 선포합니다.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이름으로 말한 일에 대한 증험과 성취함을 통해 검증됩니다.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뜻입니다.
95쪽에 조동천 이라는 분이 ‘내 인생을 변화시킨 세 가지 질문’ 이라는 책에서 쓰신 내용에 이렇게 나옵니다. ‘변해야 하는 것, 반성해야 하는것, 움직여야 하는 것은 인간인 ‘나’지 말씀이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해라 반성해라 움직이라고 하면 싫어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맞춰지길 원합니다. ‘말씀의 밑 그림에 내 생을 모자이크해야지 (즉 말씀이 기준이고 내가 거기에 맞춰야지) 내 욕심을 밑그림 삼아 말씀을 조각내 붙이려 들면 안 됩니다. 말씀의 신호에 내가 춤추어야지, 말씀이 내 발에 따라 움직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대중의 구미에 맞고 나의 구미에 맞는 말 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대중의 구미에 맞는 말 가운데 가르치는 것 중에 하나가 prosperity, 번영 복음입니다. 성경의 시편 한 군데만을 보십시다. 시편 1편 1-6절에 악인과 의인과 죄인에 대해서 얘기하고, 의인은 다 형통할 것이고, 악인은 그렇지 않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결국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할것이다 형통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언뜻 보면 그렇게 읽혀집니다. 의인의 형통에 대해서와 악인의 망하는 길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 좋은 말씀만 알면 번영 복음 (prosperity gospel)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시면 성경의 욥기, 시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핍박받았을때 썼던 베드로 전후서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편 안에 73편 아삽의 시를 보시면 전혀 다른 얘기가 나옵니다. 3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절 “저희는 (악인들은)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절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절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절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절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려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절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달리 말하면 악인이 아무런 고난도 없이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1편과 완전히 반대되는 증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종합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이 없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전혀 병에 걸리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에 고생이 없습니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고 형통하기만 합니까? 그것이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인생을 충분히 사셨다면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있고, 삶에 어려운 시련이 있을 수 있고, 병들 수 있고, 나의 믿음의 분량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질곡같은 순간을 지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을 잘못 알면 예수를 믿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시편 1편과 73편의 서로 충돌되는 것에 결론은 무엇입니까? 더 궁극적으로 보셔야합니다. 73편 내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안타까워서 하소연했습니다. 16절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악인이 형통하니 마음이 곤란했습니다)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결국은 인생들이 아무런 인생의 고난없이 악인이 형통해도) 18절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결국은 시편 1편의 말씀은 궁극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이 아무리 형통해 보여도 궁극적으로 그들의 인생이 끝나는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망하는 길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때에 우리 중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더 통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하루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생명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오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암과 싸우고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 성도들의 가족들, 또 저의 가족들. 하나님, 주님께서 여러가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들 아시지요? 병원에 가서 진단 받아야되고 검사받아야 되고 혹은 수술해야 되는 이들 주님 아시지요? 주님 기억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붙잡아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unemployment가 점점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경제도 점점 곤두박질 치고 있습니다. 확진자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주님 전 세계적으로는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느냐 아니면 기근으로 죽느냐 에서 오히려 기근으로 죽어갈 상황이 심각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에콰드로 같이 거리에 시신이 내버려 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 온 인류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이 역병이 끝날수 있도록 주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교만함을 회개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며 우리의 자비함이 없음 공감함이 없음 우리의 긍휼함이 없음을 회개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께 의탁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