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30일 2020년 목요일 아침묵상
신명기 11:22~32절 말씀입니다. 생명의 삶 제목은 ‘복과 저주의 분수령, 순종과 불순종’ 입니다.
말씀을 보시면 계속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말씀을 지켜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도를 행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다 도와주실 것이다 (22~23절 해설)
24절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 하고, 경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목할 단어는 경계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해서 무한정으로 모든 것이 너희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가 있다는 것이죠. 경계를 모르는 인생은 만족함이 없는 인생이고 만족함이 없는 인생은 결국은 행복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경계도 또한 주셨지요. 사람들은 자꾸 그 경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25절 “하나님께서…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거죠.
26절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앞에 두나니” 그러니까 너희가 해야될 것을 나는 이렇게 다 알려주었으니 너희의 선택이고 너희의 책임이고 결과도 너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택은 너희가 하여라. 하나님 명령하신 그 도에서 떠나든지 그 도를 지켜 행하든지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7~28절의 설명).
32절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서 행해라” 그것이 너희의 살길이고 번성할 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서 신약은 구약을 파기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마태복음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주님은 율법을 파기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려고 오셨습니다. 구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history입니다. 신약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실패의 역사와 부분적인 성공의 역사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 성령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생명의 삶 164쪽을 보면 ‘인생의 성패는 하나님과 그분 말씀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그분 명령을 따르는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십니다. …승리의 관건은 인간적인 조건이나 환경, 처세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여부입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를 때 우리는 세상이 두려워하며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승리한다고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해석하고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대치와 성경이 우리에게 실재로 말하는 것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기대한 바가 성경이 얘기한 것을 넘어서서 어긋나게 기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각자 기대치를 가지고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치에 주님이 미치지 못하자 주님을 매몰차게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바와 주님이 주시는 것에 차이가 있을 때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하고 실망하고 신앙을 잃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생명의 삶 본문해설 맨 마지막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늘의 복이 이 땅 곳곳에 임할 것입니다’ 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됩니다. 여기서 질문을 반드시 하셔야 될 것은,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나님이 주신다는 ‘복’이 무엇이지? 입니다. 복의 concept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자기 기대치를 갖고 잘못 믿어버리면, 하나님을 믿는데 내게 고난이 찾아오면 왜 하나님이 분명히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내 인생에 고난이 찾아왔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에 안걸립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고 아무런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대하기가 쉽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병에 걸릴수 있고 가난할 수 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믿음이나 신앙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게 되죠. 단순히 ‘복’을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복의 기준, 부자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자식이 잘되고 좋은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고 인생에 고난이 하나도 없고 소위 말해 인생이 운수대통한 그런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복의 기준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복’을 이해해 버리면 완전히 예수님을 잘못 믿게됩니다. 복의 concept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건가. 미국의 헌법에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적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데 행복의 기준이 다 다릅니다. 사람들은 마치 파랑새를 찾으려는 것 처럼 행복을 찾아서 다 합니다. 그런데 전도서야 말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솔로몬이 다 해봤습니다. 그리고나서 그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허무하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허사로다! 허사로다 !허사로다!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전도서 1:2, 14, 12:8). 톨스토이도 그의 문학을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인간이 욕심을 추구하다가 인생의 허무한 끝을 맞게되는 것을 잘 경고해주지 않았습니까?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잘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복된 삶이 세상이 주려고 하는 복된 삶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 삶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죠.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사를 아래 link에서 한번 읽어보시기 권합니다.
제목은 Coronavirus Lockdown? Look for Meaning, Not Happiness입니다.
https://www.nytimes.com/2020/04/07/opinion/coronavirus-mental-health.html
165쪽 김지철 목사님이 쓰신 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실 때 억압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자유를 주면서 다가오십니다. “환경은 내가 마련하겠다. 그러나 네가 스스로 결단해라. 어떤 일을 할지 네가 판단하고 결정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실 때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십니다. 반항할 수 있는 자유도 주십니다. …성숙한 존재니 스스로 판단해 자발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냥 둡니다. 마치 집나간 탕자처럼. 그래서 ‘인생의 쓴맛을 보고 나서야 내게 올 것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한 실패를 보고 깨닫고 내게 일찍 올 것이냐.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아시안 부모들에게 쉽지 않습니다. helicopter mom이나 tiger mom 같이 자녀들을 기르면서 감독하고 조정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 아시안 부모들에게 있어서 자녀에게 freedom을 준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거부할 수 있는 권한, 반항할 수 있는 자유,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도록 하고,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알려줘야 됩니다. 복과 화가 어떠한 것인지 오늘 말씀처럼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앞에 두리니”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 처럼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기대해야될 줄로 믿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4월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고 참된 행복의 기준을 깨달아 알아 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