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01일2020년 화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예레미아 26:1~15절입니다. 생명의 삶에서의 제목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참된 예배자가 되라’ 입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유다의 왕 요시다의 아들 여호와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하나님 말씀이 예레미아에 임했습니다. 예레미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이제 부터 주시는 말씀에 대해서 한마디도 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은 그대로 다 말하라. 혹 그들이 들어서 각각 악한 길에서 돌아오면 내가 내리려고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하면 4~5절을 보니 “하나님이 꾸준히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았다” 6절 “내가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32쪽 설명이 잘 나와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로는 언약궤가 있던 장소였지만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고, 예레미야 당시에도 폐허 상태였습니다.’ 예레미아가 이런 얘기를 하니 들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성전에 적대적이고, 반민족적인 말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옳다고 하지 않고 예레미야를 죽여야된다고 분위기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예레미야를 벌주려고 한 것이죠. 그랬을때 예레미아가 13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14절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죽이면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가지 각도에서 이 말씀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겸손히 여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죠. 32쪽 아래의 말씀처럼 보통은 ‘위로와 평안의 말씀만 은혜로 여기고, 책망과 경고의 말씀에는 마음을 닫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내 귀에 들리기 좋고 좋아하는 말씀만 듣는 경향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지요. 그리고 혼을 내거나 책망하는 말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성향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달리 듣고 돌이킬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다윗이 020년 화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예레미아 26:1~15절입니다. 생명의 삶에서의 제목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참된 예배자가 되라’ 입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유다의 왕 요시다의 아들 여호와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하나님 말씀이 예레미아에 임했습니다. 예레미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이제 부터 주시는 말씀에 대해서 한마디도 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은 그대로 다 말하라. 혹 그들이 들어서 각각 악한 길에서 돌아오면 내가 내리려고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 하면 4~5절을 보니 “하나님이 꾸준히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셨는데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았다” 6절 “내가 이 성전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32쪽 설명이 잘 나와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로는 언약궤가 있던 장소였지만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고, 예레미야 당시에도 폐허 상태였습니다.’ 예레미아가 이런 얘기를 하니 들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성전에 적대적이고, 반민족적인 말을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옳다고 하지 않고 예레미야를 죽여야된다고 분위기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예레미야를 벌주려고 한 것이죠. 그랬을때 예레미아가 13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14절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죽이면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가지 각도에서 이 말씀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겸손히 여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죠. 32쪽 아래의 말씀처럼 보통은 ‘위로와 평안의 말씀만 은혜로 여기고, 책망과 경고의 말씀에는 마음을 닫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내 귀에 들리기 좋고 좋아하는 말씀만 듣는 경향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지요. 그리고 혼을 내거나 책망하는 말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성향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우리에게도 책망의 말씀을 달리 듣고 돌이킬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을 볼때 다윗에 대해서 손가락질 하기 쉽지만, 절대 왕권을 지녔던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의 죄를 고발할 때에 회개하고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통애하고 자복했던 다윗은 참으로 신앙인으로써 우리에게 큰 도전과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하나님 안에서 다윗의 그 회개를 본받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예레미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말씀하셨고 가감없이 전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듣는 동족 입장에서 보면 반민족적인 말씀을 예레미아가 선포한 것입니다. 민족의 반역자와 같은 이야기를 했고 핍박을 받습니다. 이 말씀을 예레미아에서 생각해보고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32쪽 하단에 ‘참된 사역자는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 말씀을 전할때 14절 말씀에서 처럼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각오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갑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측면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부분이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겠다고 자기 확신에 가득차서 다른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성격을 띤 조언이나 판단, 정죄나 이런 부분은 조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의 아픔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도 바울의 본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말씀을 전했을때 삼년간 밤낮을 그들이 잘못될때 눈물로 호소하고 가르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도 바울의 성숙한 지도자의 마음, 권면자의 마음을 가져야 될줄로 믿습니다.
33쪽에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역자는 죄와 회개, 구원과 영생, 믿음과 사랑, 은혜와 긍휼, 정의와 공평 같은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고,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생각하면 기쁨과 열정이 솟아오르는 사람이 참된 사역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에 옳은 말을 하더라도 우리 밑바닥에 사랑과 긍휼이 있는가. 긍휼과 사랑이 없이 옳은 말만 하게 되면 자기의 불의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수 있습니다. 고로 겸손하게 사랑과 긍휼이 그 밑바닥에 늘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귀한 말씀을 전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하루도 생명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오늘도 붙잡아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때 겸손한 마음을 우리를 허락하시고, 주님 말씀의 은혜를 잡고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