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22일2020년 토요일 아침묵상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의 전체의 구조를 보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의 특징은 앞부분에는 신앙적, 교리적인 설명과 가르침이 나왔다면, 그 가르침과 교리적 훈계 이후에는 실제적인 생활의 권면, 적용과 신앙의 윤리와 신앙적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삶의 모습으로 윤리적은 삶으로 삶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15절 말씀에서도 공감의 능력을 가지고, 함께 좋은것도 슬픈 것도 나누며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죠. 저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던 이 구절의 한 측면은, 어떤 목사님이 남들과 함께 슬퍼하는 거는 할 수 있는데 살아보니 남이 잘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 쉽지않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하고 같이 자란 동기가 나보다 더 잘되었을때 그 일을 축하하는 것이 쉽지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 말이 옳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은, 슬퍼할 일도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일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일도 함께 축하해주는 그런 마음인 것입니다.
16절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하지 말라” 우리가 왜 누군가 성취했을때 즐거워할 일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냐면 대개 성취한 사람들이 자고하기가 쉽고 높아지기가 쉽고 교만해지기가 쉽기 때문이죠. 여기에서는 마음을 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이 말씀을 “어둠으로는 어둠을 이길수 없고, 오직 빛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미움으로 미움을 이길수 없고, 오직 사랑으로 미움을 이길수 있다. (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라고 하시며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22쪽 해설이 나와있습니다. ‘세상은 원수를 미워하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당한 만큼 갚아 주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합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악한 일과 억울한 일을 악으로 되갚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의 원리는 되갚는 것이죠. 받은 만큼 그대로 앙갚음하는 것이죠. 인종하고 상관없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내가 당한 대로 되갚아 주려고 하고 오히려 되갚아 주는 것을 더 넘어서는 일들도 비일비재 합니다. 화가 풀릴때까지 과도하게 보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세상의 원리를 따라가지 말고 주리고 목마른 원수에게 은혜를 베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쉽지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라. 이런 말씀의 정신을 세상의 언어로 풀이해서 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세상의 원리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로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조정민 목사님이 ‘왜 분노하는가’라는 책에서 좋은 예를 말씀하십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 사이에 있는 큰 안데스의 예수님 상이 1904년에 양국의 국경 분쟁이 타결된 것을 기념하며 제작되었는데 만들고 보니 아르헨티나 쪽을 향해서 바라보게 되었는데 칠레의 사람들이 왜 우리에게 등을 돌리느냐고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신문사 편집국장이 사설에 이렇게 써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수님 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아직 더 많이 돌봐 줘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글로 인해서 사람들의 분노가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인용해서 이렇게 정리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인은 위의 편집국장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분노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 아니라 깊은 통찰력으로 분노를 가라앉히고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 그런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오늘 말씀 그대로 악에게 악으로 지지 않게 하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울며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참된 생명의 삶, 화목의 삶, 화평의 삶, 거룩의 삶, 용서의 삶, 사람의 삶,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적으로 여전한 팬데믹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긍휼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