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15 2020 아침묵상

08월15일2020년 토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로마서 10:1~13절입니다. 생명의 삶 편집부가 잡은 제목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신앙’ 입니다.

오늘 말씀은 네가지 포인트로 보려고 합니다.

1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오늘 로마서 10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 하나가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이사야 본문에서도 나오고 이 로마서에서도 특별히 많이 나옵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리고 오늘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교회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많이 얘기하는데 듣는 사람마다 다를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총체적인 정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오늘 말씀을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이 바울 사도가 말씀을 전개하면서 원하는 것이 이스라엘을 위함이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구원을 받기 원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십시다.

두번째, 2절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께 열심했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죠.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의를 세우려는 사람은 자기 의에 빠지지 쉽고 결국은 자기는 의롭다 생각하고 남은 불의하다고 생각해서 남을 정죄하기가 쉬운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를 알아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오셔서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래서, 6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자기 행함으로 자기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을 덧입는 사람인 것이죠.

세번째,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구원이 또 나오죠. 어떤 구원을 얘기하는 것인가.

일단 첫번째로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교회에서 쓰는 어법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갑니다 라는 미래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은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천국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아니하고 이미 지금 현재적인 시점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 성령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이 땅에서 살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며 사는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삶인 것이죠.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도 영생을 죽지 않고 사는 영원히 사는 것을 본질이 아니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그가 보낸자 예수를 아는 것이다 라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의 본질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씀을 생각해보면 9절은 하나님의 관계의 회복이고,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궁극적으로는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겠죠. 하지만, 단순히 천국으로 간다는 장소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고, 천국에서의 삶도 결국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인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실제로는 구약에 나오는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본질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보면 구원은 결국은 거듭남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의 원형이 회복되는,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진리의 삶, 생명의 삶, 빛된 삶이 되겠지요.

네번째 포인트는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여기를 그냥 휙 지나가기가 쉬운데 ‘누구든지’가 강조되어야 합니다. 12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많이 읽으니 크게 다가오지 않지만, 2000년전 바울에게는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완전히 그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지금 사는 우리세대에 백인 우월주의나 racism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열등하게 보고, 다른 인종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어떤 사람이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그것을 깨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철저한 그의 사고방식에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은 유대민족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이방인이고 이방인은 더럽다고 갇혀서 살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그는 하나님이 만유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것이죠. 모든 사람에게  부여하시고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셨다. 그리고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유대인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라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의식 가운데 깨어져야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이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 말씀을 들을때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감사하는 저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생명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진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