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07일2020년 금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로마서 8:1~11절입니다. 생명의 삶 편집부에서 잡은 제목은 ‘성령의 법 아래 거하며 생명과 평안을 누리라’ 입니다.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율법을 다 완성할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입니다. 4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본성적으로는 육신을 따르고 우리의 욕심을 따라 하기 때문에 율법을 이룰수 없는데 하나님의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을 따라 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실패할 수 있는데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쉽게 말하면 성경에서 사람을 보는 관점은 육신을 따르는 자인가 영을 따르는 자인가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말씀은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육신에 거하는 자의 한계와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냐고 육신에 거하는 자의 탄식을 했다면 8장에서는 급전환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내실 수 있는 비결이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것을 8장에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육신 안에 있는 자가 자기만 바라보면 실패와 한계를 느끼는데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안에 계신 성령님을 따라 행할때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수 있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영을 따라 행하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9절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 있어서 생명의 삶의 비결과 비밀은 ‘예수님 안에 있는가 요한 복음 15장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붙어 있는가? 예수님 안에서 내가 너안에 너가 내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니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안에 접붙어 있는가?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주님과 매일 매일 동행하고 있는가? ‘가 하나의 key이고, 또 다른 key는 ‘우리 안에 성령이 역사하실때 그 성령을 따라 살고 있는가? 성령을 따라가고 있는가?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가고 있는가?’ 인 것입니다.
58쪽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좇는 육신의 삶을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생명과 평안을 누립니다. 성도는 매가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생각과 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로 영이 살아난 것을 체험한 성도는 여전히 죄의 몸을 지니고 이 땅에 살지만 소망을 가집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영원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아야 합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쓰신 ‘예수 소망’이란 글의 일부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팀 켈러의 ‘예수 예수’라는 책에는 방탕하게 산 여인이 복음을 듣고 돌아온 얘기가 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울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언니가 “평생 너처럼 부도덕한 짓만 저지른 사람이 죽기 5분 전에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절대 못믿어, 정신차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목산님이 성경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이 성경의 약속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자유를 찾았습니다. 한 성도가 그녀의 언니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전에는 돌아가야 할 것이 어디인지 몰랐기에 사역이 실패하고 삶이 무너지면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넘어지고, 무너지고, 지치고, 실패했을 때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면 언제나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이 여인의 삶에 대해서 그 언니가 얘기한 것은 바리세인의 입장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방탕한 삶을 살다가 죽기전에 극적으로 회개하는 사람이 있을때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윤리와 인간의 도덕으로 잣대를 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윤리나 도덕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의 자비인거죠. 큰 자비로의 초대인거죠.
두번째로는 유기성 목사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약간 결이 다른 얘기입니다. 로마서 8장의 부분으로 보면, 성령을 따라 산다 할지라도 우리가 여전히 육신 안에 살기 때문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아도 여전히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좌절할 것이 아니라 털고 일어나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털고 다시 성화의 길을 가고, 털고 다시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참수하고 좌절케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큰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고로 오늘도 생명의 삶, 성화의 삶, 성결의 삶을 살기 위해 그 방향으로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생명의 삶, 성화의 삶, 거룩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나아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삶을 살기를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