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월06일2020년 목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로마서 7:7~25절입니다. 생명의 삶 편집부에서 잡은 제목은 ‘율법 아래 있는 죄인의 곤고한 외침’ 입니다.
7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맞는 말이죠. 어른들이나 특히 아이들에게 뭔가를 금지하면 더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율법이 탐내지 말라하니 탐심이 안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8절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절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절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절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예를 들어 탐심하지 말라 하였더니 탐내는 마음이 무엇이지 하고 그 반대로 죄로 갔다고 하는 것이죠. 말씀을 이어 좀 더 가보십시다. 13절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수 없느니라…” 선한 것은 율법을 말하는 것이죠. 율법은 선한 것인데 문제는 ‘나’ 라는 것입니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절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절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이건 하나님 안에서 열심히 살려고 신앙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죠.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처음에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양심이 작동하죠. 그런데 계속해서 양심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 방향으로 가면 악과 탐욕,죄악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더이상 15절 말씀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의 탐심과 정욕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냥 가버리게 됩니다. 에베소서 말씀처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을 따라서 마음과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죠.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발견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화의 삶을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16절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하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원하는 것이죠. 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절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오늘 이 말씀들은 문학과 심리학에서 수많은 소재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약간은 다르지만 ‘헐크’라는 것도 아주 점쟎은 사람안에 무시무시한 헐크라는 것이 들어있지요. 문학에서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우리 안에 또 다른 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옛날에 가시나무 새라는 노래에서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고 노래했습니다. 내 안에 한 자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습의 자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22절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을 깨달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좌절감이었죠. 복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화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5절은 복음이 있다는 것이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8장에서 나옵니다. 복음을 기다리면서 오늘 말씀처럼 내 안에 거하는 죄가 성령의 능력으로 파쇄되는 은혜를 사모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먼저 기도합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수많은 사상자들, 이재민들, 집을 잃고 부상을 당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곳에 올라온 폭풍때문에 수재민이 된 수많은 사람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주님 긍휼히 여겨 주시고 COVID19의 확산 속에서 많은 절망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저희 교회 모든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붙잡아 주옵소서. 우리 안에 죄가 있을지라도 그 죄를 넉넉하게 이기게 하시는 복음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지배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도록 하는 은총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