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02 2020 아침묵상

06월02일2020년 화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신명기 27:11~26절입니다. 생명의 삶 제목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십시오’ 입니다.

11절 “모세가 그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절 “(여섯 지파)는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13절 “(또 다른 여섯 지파)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14절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나머지 백성들은 아멘으로 답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36쪽에 나와있습니다. ‘신명기 27장에는 축복 선언이 생략되고 저주 선언만 기록됩니다. 축복과 관련된 계명은 받아들이기 쉽기에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없는 반면, 불순종의 죄는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었기에 모세는 12개 저주 목록을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또한, 37쪽에 이와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첫발을 내딛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저주의 말씀을 주십니다. 자칫 들떠서 언약 백성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도록 ‘경고’의 쉼표를 주신 것입니다. 오선지에 적힌 음표만 악보가 아닙니다. 쉼표도 악보의 주요한 부분입니다. ..축복만이 아니라 저주도 복음의 일부입니다. 삶을 성찰하도록 하는 여백인 저주의 경고를 간과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가지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첫번째는 15절 “(모든) 만든 우상은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 대신에 자기를 위하여 세우는 우상을 만드는 자에 대한 저주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것이 왜 저주를 받는 것인가요? 이재철 목사님이 거기에 대해 잘 설명하셨습니다. 우상은 그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안에 있는 탐욕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은 절대로 우상을 섬기는 자의 존재적 변화나 태도, 성품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고 우상을 섬기는 자가 자기의 만족과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뭔가를 갖다 바칩니다. 그러나 참 신앙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의 변화를, self reflection을 요구하고, 회개를 요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하나님께 나를 맞추어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 중심이 변화되지 않는 삶이라면 우리의 신앙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두번째 16절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우리에게 생명의 통로가 된 부모를 귀히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인륜이겠습니다.

세번째 17절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기 중심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살면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데, 특별히 이 세대는 ‘me’ ‘me’ ‘me’ 나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Narcissism이라는 자기만족과 자기애 만을 아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나는 그런 이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네번째 18절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시작 장애인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의 웃음거리와 장난거리를 삼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입니다.

다섯번째 19절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힘없고 약한 자를 엎신여기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20절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일곱번째 21절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여덟번째 22절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아홉번째 23절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모두 성적인 윤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열번째 24절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열한번째 25절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일들입니다. 나 중심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이웃을 암살하고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열두번째 26절 말씀에서 결론을 내셨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때 우리의 믿음과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은 완전히 상반된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에 대해서 오해했기 때문에 마태복음 같은 말씀이 필요하고 야고보서 같은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믿음은 그 믿음이 건강한 믿음이라면 반드시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행함을 산출해냅니다.  그래서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야고보의 선언이 깊은 울림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걸로 생각하지 말라 내가 율법을 완성하러 왔도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도 귀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그냥 ‘믿습니다’고 말만 하고 그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행함이 없으면 자기를 속이는 신앙인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성경조차도 자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험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로,  깨어서 주님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자기를 보고 회개하고 깨닫고 돌이키고 성숙하고 성장하고 성결해지는 우리 알링턴 한인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생명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성령님을 충만하게 우리에게 부어주사 성령 충만한 성도들, 성령 충만한 교회, 성령 충만한 나라, 성령 충만한 열방이 되게 하여 주오소서. 곳곳에서 혼돈과 아픔과 절규와 탐욕과 모든 것을 보게됩니다. 주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신앙 안에서 회복되어지는 주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오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어두운 눈을 밝혀 주시고 어두운 귀를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지도자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와지는 은총이 있게하여 주오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