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28일2020년 목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신명기 25:1~10절 입니다. 제목은 ‘모든 피조물을 위하는 하나님의 보호 제도’입니다.
첫번째는 1절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절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절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심지어 잘못했다 할지라도 과하고 지나치게 그것을 넘어서서 하지말라,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154쪽에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범죄자의 인격도 존중하십니다…과도한 매질은 징계와 교도 차원을 넘어 범죄자의 생명과 인격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4절 “곡식 떠는 소에게 말을 씌우지 말지니라”
여기에 대해서 설명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가축의 생명도 존중하십니다…소가 곡식 단을 밟거나 타작 기구를 끌며 낟알을 떨어내는 일을 하다 배가 고프면 그 곡식을 먹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제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피조 세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말 하지 못하는 동물도 그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는 청지기 역할을 맡았는데 청지기의 의식을 넘어서 내가 왕이고 주인이라고 해버리면 모든 것을 착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조심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5절부터 10절에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해석이 필요한 challenge 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많이 아시는 내용입니다.
5절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의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대 행할 것이요” 6절 “그 여인이 낳은 첫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절 그러나 그 형제가 하기 싫어하면 장로를 모아놓고 “이스라엘 중에서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이렇게 형의 아내가 혹은 동생의 아내가 와서 얘기할 것이고 9절 ”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형제들이 의무를 안하겠다고 하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창피와 모욕을 주고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10절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얘기했습니다.
신학적으로 많이 쓰는 용어로는 ‘형사취수’ 라는 말도 있고 ‘계대 결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본문 해설을 다시 보시면, ‘고대 근동에서는 형제가 아들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가 형수를 취해 아들을 낳아 죽은 자의 대를 잇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이러한 계대 결혼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면 비윤리적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문 보존의 방편이었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과부의 사회적 보호막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간적은 생각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다가 수치를 당하지 말고, 주어진 의무를 기꺼이 감당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측면으로 적용했습니다.
내가 회피하지 않고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요? 의무가 지워졌던 형제의 관점에서 보면 과부가 된 형수나 제수의 사회적 보호와 안전막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었으니 오늘 우리에게는 이렇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넘어서 이 말씀을 갖고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앞에 생명의 삶 편집부에도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비윤리적으로 생각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여러분 성경을 어떻게 읽으십니까? 아시다시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혹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여러가지 교단과 교파가 있습니다. 크게는 카토릭과 개신교가 있고 개신교 안에는 수많은 교단들이 있습니다.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등등이 있고 미국에는 하나님의 성회등 여러가지 더 많은 교단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정통 교단이라고 인정을 받는 교단도 있고 한국 같은 경우는 심지어 개신교단이 아닌 이단 이라고 분류하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 교단들과 교회들 마다 신학이 다 다릅니다. 아주 더 쉬운 분류로 하면 보수적인 교회가 있고 진보적인 교회가 있습니다. 신앙에도 아주 극도의 보수적인 신앙이 있고 중도의 신앙들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어딘가에 위치한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극도의 보수는 나쁘고 극도의 진보는 좋은 것인가요? 성경을 읽을 때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어떤 분들은 문자 그대로 다 읽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해석의 여지가 없이 명약관화한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읽어도 적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않는 재고의 여지가 없이 너무나 확실한 성경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본문들은 문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본문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읽으십니까? 도전해 보십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분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5절 말씀에 예를 들어 여러분의 자녀나 형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큰 아들이 죽고 둘째 아들에게 형수를 취해서 형수와 결혼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형제인데 아우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형이 된 입장에서 이미 여러분의 아내가 있는 상황에서 제수씨를 아우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이걸 어떻게 적용하시겠습니까? 성경에는 그렇게 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형사취수의 제도와 관련되어서는 성경에 유다와 나중에 결혼했던 다말이라는 인물과 룻이라고 하는 인물이 물림의 법에서 나옵니다. 근본적으로는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고대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polygamy라는 일부다처제가 성경의 다윗, 아브라함, 야곱, 창세기의 유명한 족장들에게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쓸때 제가 기억하기로는 polygamy는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형사취수’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 대다수는 문자 그대로 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할 경우에 아주 비윤리적 인간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받을 확률이 아주 높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에서 ‘해석’입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문자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극도의 주장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2011년 10월 즈음에 46세의 Aldo Bianchini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탈리아의 Viareggio 지역에 있는 St. Andrea Catholic Church에서 사제가 설교를 하기 직전에 벌떡 일어나 자기의 두 눈을 뽑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시각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이 사건과 연결해서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27~29절에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라고 하셨습니다. 이 Aldo라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때 우리에게는 건강한 신학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보실 때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 생명대신 주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하지 않게 하시고 잘못 적용하지않게 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잘 깨달아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오소서. 동물의 생명도 귀히 여기고 죄인의 인격도 귀히 여길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더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회피하는 저희가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오소서.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건강한 신학과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오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