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12일2020년 화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신명기 17:1~13절입니다. 생명의 삶에서의 제목은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는 언약 백성의 증언과 판결’ 입니다.
1절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흠이 있거나 부족한 것은 드리지말고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2절에서 3절을 보면 남자나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에 가서 절하게 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4절에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그냥 얘기만 듣고 어떤 결정을 하지말고 자세히 전후 좌우를 다 알아보고 여러가지 정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5절에 너희가 해야될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6절에 보면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 죽이지 말 것이며” 여기서는 죽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사에서는 때때로 어떤 모함이나 누명을 씌우거나 심지어 두 세사람 조차도 입을 맞춰서 한 사람을 억울한 길로 몰아갈 수 있는 일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제 절차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8절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너가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9절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우리가 살고 사회도 법치국가에서는 3단계의 법정이 있습니다. 일반 가정법원에서 고등법원에서 그리고 대법원에서 푸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하면 어떤 경우는 금방 끝나지 않고 수년씩 걸리는 재판들도 있습니다.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절차에 따라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절에는 그런 절차를 밟아서 너가 재판장들의 얘기들을 들으면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11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12절 어떤 사람이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제하여 버리라” 말씀하십니다.
82쪽 해설에 보면 ‘…어떤 소문이 들린 경우,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속단하지 말고 최소한 두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선입견이나 악의적 모함으로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과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정의롭고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품성입니다’
오늘의 기도에는 ‘제 마음과 삶에는 주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공의로우신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사소한 불의에도 눈감지 않게 하소서.’라고 적혀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약한 부분 중에 하나가 정의에 대한 문제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기도와 찬송은 너무 열심히 합니다. 세계 어떤 교회에 비교해 볼때 결코 뒤지지 않는 기도의 뜨거움, 찬송의 뜨거움 그리고 예배의 열심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미국 기독교인들과 비교해 볼때 한국 기독교인들이 부족한 것은 구약의 큰 전통중의 하나인 정의에 대한 문제, 하나님이 말씀하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호하고 하는 하나님의 본심의 문제에 대해 너무나 부족한 영성을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Inequality” (불평등) “Injustice” (불의) 라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미국의 Pledge of Allegiance라는 맹세를 할때 맨 마지막에 ” Justice for all”라고 말합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이름 안에 세워진 국가이면서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가 이 나라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김병삼 목사님이 지으신 책 ‘사랑이 먼저다’라는 책에서 나오는 부분 중 ‘은혜를 알아야 규율도 지킨다’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 내에서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돈을 냈기 때문에 마땅히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태도가 지나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쩌는 그는 대기업 중역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에게 받은 도움과 은혜를 잊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받아야 할 대우를 억울함에 사로잡혀 분노를 참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마땅하다’ ‘나는 그 정도가 마땅하다’ ‘나는 대기업 임원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 라는 마인드 셋인 것입니다. 그러니 노발대발 하고 자기의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이어가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 역시 은혜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하나님 앞에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 앞에서 감히 무례할 수 없습니다… 말씀앞에서 겸손히 순종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누릴 권리보다 받은 사랑이 더 크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쉽게 노하고 성내는 이들이 특히 생각해볼만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17장11절 말씀을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건을 판결할 때 지킬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재판관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율법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의식할 때 뇌물을 받고 권력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의 외모에 이끌려 판단을 흐리는 실수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공의는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법정은 어떻습니까? 법치국가는 그래도 낫지만, 판사의 정치적 성향, 역사에 대한 이해, 가난과 부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흐리기도 하고, 때때로는 자기의 이득에 맞게 판결을 내리기도 합니다. 법치국가가 아닌 나라는 더욱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뇌물을 받고 권력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사람의 외모에 끌려서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이 신앙 공동체, 이스라엘 공동체 곳곳에서 말씀해주고 계셨습니다. 오늘 이 아침 생각해 보십시다. 이 나라가 justice for all,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나라인지,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모든 사람들 가운데 불평등과 불의가 얼마나 가득차 있는 세상인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 정의가 가득하고, 노력에 따라 수고한 사람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어려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는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새 하루를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삶을 통하여 이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자비롭고 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의 공의가 펼쳐지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