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06 2020 아침묵상

05월06일2020년 수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신명기 14:1~21절입니다. 생명의 삶에서의 제목은 ‘거룩한 백성의 구별된 삶’입니다.

오늘 말씀 세가지로 보겠습니다.

첫번째, 1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2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이 해설이  56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자기 몸을 베거나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미는 행위는 죽은 자를 애도하던 이방인의 풍습이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인 양 몸을 상하게 하여 과도하게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방인의 풍습이었고 그것을 따라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번째, 오늘 말씀에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에 대해서 쭈욱 나옵니다. 3절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여러분 보시다시피 어떤 것은 먹고 먹지 말라고 ‘새’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4절부터 20절까지) 생명의 삶 본문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언약 백성의 거룩함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짐승, 물고기, 새 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구별해 주셨습니다. ‘ 이 리스트를 보면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저것을 먹으면 안되나? 저것을 먹어야하나? 하는 여러가지 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생명의 삶에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매일 식사 때마다 음식에 관한 하나님의 규례를 기억하고 따르는 일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뜻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최고 훈련이었을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러한 음식 규례를 더는 지키지 않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아마도 구약시대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서 말씀해주신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을 때 신명기에 여러번 하신 말씀이 ‘너의 행복을 위하여 주는 이 명령과 규례를 지켜라’ 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겠지만 일차적으로는 그 말씀을 듣는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서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다고 여러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음식규례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아마도, 모든 것을 설명해도 그 당시에 백성들이 알아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단순하게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가서는 그러한 음식 규례를 다 지키지는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57쪽에 김두환씨가 쓰신 ‘완전이 아닌 구별’이라는 제목에서 ‘당신은 참 소중합니다’라는 글에 여러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남성 교우의 고백에 따르면, 회사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 동료들의 음담패설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인이나 비 그리스도 인이나 구별이 없답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다들 그렇게 하는데 더는 교회에서 죄의식 주지 맙시다”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완전함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입니다. …세상의 문화가 “다 그런거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살더라도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나오는 두 문장 “다들 그렇게 하는데” 그리고 “다 그런거 아니냐” 입니다.

우리 인간은 개인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집단의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때때로 사회적 분위기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습니다. 흔히 말해 여론, 분위기, 군중심리라고 하고, 세상풍조라고도 성경에 씌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의 분위기는 바뀝니다. 지금의 상황의 예로,  미국에서 마스크 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습니까? 강도들이 은행을 털때 모자쓰고  마스크를 씁니다. 흑인 형제 자매 같은 경우는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경찰에게 범죄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아 아마 체포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런 측면때문에 흑인 형제 자매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을 참 주저한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 사회에서 이미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냐면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마스크가 다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실재로 거리에서 몇개월 동안은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최근에서야 여론이 바뀌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도 마스크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매를 못해서 일어난 전쟁일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것을 개인의 자유냐 억업이냐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어떤 상점에서는 들어오는 손님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한 경비원이 그 손님에게 총을 맞아 죽는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이게 다 무슨 문제입니까. 군중심리와 여론의 문제입니다. 세상풍조는 어떻습니까. 나날이 바뀝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다 그런거 아니냐..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두사람이 할 때는 그렇게 안합니다. 분위가 그렇게 바뀌면 그래도 되는갑다 하고 사람은 그렇게 주위의 분위기에 따라 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아주 극단적인 나쁜 예와 좋은 예도 있습니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학문의 꽃을 피웠던 독일, 지성인들이 많았고 신학의 꽃을 피웠던  신학계와 목회자와 교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 시대에 얼마나 많은 독일 지성인들이 침묵했는지 위대했던 독일인들이 마치 세놰된 것처럼 역사속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잘 아십니다. 한 장의 사진에는 , 대세적인 그런 분위기에서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하이 히틀러를 외칠때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는 bad example이 아주 많습니다. 왜냐면 세상 풍조, 군중 심리, 분위기, 여론은 나쁜 쪽으로 가기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속에서는 good example도 있습니다. 대중들의 의식이 깨어나서 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 그들의 힘을 모아 바른 방향으로 간 아주 적은 소수의 예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들 그렇게 하는데..세상 문화가 다 그런것이 아니냐 할때에 매우 주의해야 됩니다. 어떤 것이 바른 길인지 어떤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인지 말입니다.

여기 있는 말씀으로 보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서도 유익한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인가 잘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마스크를 써야되냐 말아야 되냐 이걸 내 자유에 대한 침해냐 ..여러가지 참 눈이 번쩍 떠지는 상황 가운데서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 하루를 열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혼란스러운 이 상황 가운데서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마스크를 쓰라고 권면했다가 총에 맞아 죽은 그 경비원과 가족들을 주님 위로하여 주시고 하나님 너무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주님, 세상 풍조는 바뀌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취해야 될 길이 무엇인지 아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