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10 2020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 말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마태복음 27장45절에서 60절 입니다.

여기 오늘 말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 돌아가시는 장면을 말씀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46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6시간 십자가에서 달리셔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모든 육체적 고통을 당한 후에 6시간 후에 주님께서 이제 마치시면서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주님께서 외침을 탄식을 십자가 상에서 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이 말씀은 시편을 통해서 또한 인용하신 말씀이긴 한데 성경에서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때때로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침묵을 많이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 나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나의 간구를 들어달라고, 나의 울부짖음을 들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여러가지 신학적인 신앙적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일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속하여 받고 계신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지요. 그러면서 주님은 여기서 처음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탄식하시면서 소리 지르시는 것이지요. 또 오늘 이 아침에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서 예수님은 참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주시고, 그들이 주님과 자기를 통일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모습들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또 누구에게 은혜가 감동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냥 전쟁에서 부모님이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고아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어미에게 버림받는 아이들이 있죠. 어떤 출생으로 말미암아 버림받게 되었는지 알수 없으나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장 본인을 사랑해야될 엄마에게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라하는 그 아픔을 평생 안고가야 하는 사람들  여러분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가 잘 기르던 개나 고양이들을 길가에 버리는 일들이 있지않습니까? 그 유기견 유기고양이들이 갖는 트라우마가 있지 않습니까? 버림받은 사람들, 버림받은 동물들, 버림받았다는 경험을 받은 인생에 가지고 있는 큰 아픔들 그것을 어찌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알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여기 말씀을 통해서 보면 , 그런 인생의 버림받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님이 하시는 말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는 말씀에 그들이 깊은 동일감을 느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일생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이 되셔서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을 만나시고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생로병사를 다 경험하시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긍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또한 있기를 또 그런 이들의 아픔을 헤아릴수 있는 넉넉함이, 너그로움이, 사렵깊음이 우리안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사태 가운데서 지금 누가 가장 vulnerable한 사람들인가, 누가 가장 연약한 사람들인가, 누가 지금 이 시기에 강도만난 사람인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침마다 새벽기도 후에 말씀을 묵상하고, 그 다음에 시대의 문제들을 파악하고 기도해야 될것들을 찾기 위해서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저께 발견한 기사중에  하나는 이렇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사태 가운데서 맨처음에는 의사와 간호사 최전선에서 싸우는 그분들의 struggle에 대해서, 고통, 싸움에 대해서 알게되었고, 시간이 조금더 지나서는 Grocery store 사람들이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전에  신문기사들에서 그들의 걱정과 안위를 염려하는 기사들을 먼저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저께에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사태 가운데에서 앞을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서도 새로 눈뜨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갇혀있는 이 때에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면서 내 입장밖에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우를 많이 범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모델은 다른 이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너그로움이 사려깊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줄로 믿습니다.

두번째 오늘 여기 55절에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절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하였습니다. 여기 여러분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을 섬기면서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예수님을 섬기면서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왔던 여인들, 제자들은 누가 주님의 우편에 좌편에 앉느냐를 가지고 싸우고 있던 그 마당에 그저 이름없이 예수님을 섬기면서 왔던 여인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아파하며 울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가운데 우리의 위치가 예수님의 좌의정 우의정 예수님의 수제자 그룹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정말로 주님을 위하는 삶이라면, 여기 있는 여인들처럼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와 주님을 섬기던 그들이 결정적으로 이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오늘 여기 말씀에 오늘 읽으신 말씀 57절에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예수님 삼년 공생에 예수님 가장 최측근으로 있었던 열두명의 제자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게 큰소리 뻥뻥치던 베드로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본인들도 무슨 소리냐 우리도 마찬가지라 했던 나머지 열한명의 제자들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제자들이 죽을까봐 두려워서 다 숨고 다 도망간 그때에 이제 막 처형이 끝났는데 아리마데 부자인 요셉이 당돌하게도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겁도 없이 달라고 합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요. 여기 성경이 오늘 증언합니다. “그도 예수의 제자다” 그의 평상시에 얼마나 예수님 옆에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망설이던 제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자기의 정체를 숨겼던 제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60절에 ”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 무덤입니다. 자기가 인생에 황혼이 와서 인생이 이땅에서 끝나면 자기가 자기의 시신을 두려고 자기가 판 무덤에 예수님을 새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발에 향료를 부었던 그 여인의 사랑, 그 여인의 헌신, 그 여인의 마음이 생각납니다. 여러분, 그때 저들중 일부는 왜 돈을 허비하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이 하는 일을 그냥 두라. 나중에 그 여인에게 기억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오늘 말씀은 주님께 아낌없이 자기의 새 무덤을 드린 아리마데 부자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이 증언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부자라고 해서 다 넉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라고 해도 인색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하다고해서 다 인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있으면 그 과부가 다 드린 것처럼 주님께 기쁨으로 드릴수 있는 것이지요. 십자가 사건은 참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여러 군상들의 사람들의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관의 그 고난의 길과 이 십자가 사건의 여정은 또한 제자들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오늘 성 금요일을 맞이하면서 저는 저나 여러분이 이 아리마대의 사람 부자 요셉과 같이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또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왔던 이름없었던 그 여인들처럼 주님을 섬기며 비록 가까이 가지 못할지라도 멀리서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을지라도 인생에서 버림받은 경험을 갖고 아파하는 사람들, 동물들, 아파하는 지구를  함께 생각하며 인생의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이 순간을 지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방송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Grocery store에서 일하는 많은 직원들이 아프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집안에 계실때 여러분에게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집배원의 수고를 잊지마십시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저를 위해서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마십시요. 우리는 편안하게 우리의 안전을 지키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때, 그럴수 없는 감옥에 있는 이들, 빈민가의 사람들, 아프리카의 난민들, 시리아의 난민들, 남미와 의료적 현실이 처참한 나라의 사람들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고난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고난 받고 있는 우리 이웃들을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셔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셨던 그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어마어마한 울림으로 하나님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최소한 아버지 하나님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낳자마자 어미에게 버림받은 경험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어떤 이는 화장실에 버려지고  어떤 아기는 쓰레기 통에 버려지고 어떤 아기는 고아원 문 앞에 버려집니다. 왜 버려졌는지도 이유도 모른채로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이 고아로 자라서 나중에 입양되었을때 버림받았다고 하는 그 상처가 마음에 씻기지 않는 아픔으로 얼마나 깊이 남아있습니까. 하나님 동물들도 잘 기름받다가 버려졌을때 유기 애완동물들의 아픔이 또한 어떻습니까. 주님. 그들만 그렇습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경험들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관계에서 완전히 무시당하고 완전히 상처투성이를 입어 나중에는 버림받았다고 하는 철저히 버림받았다라고 하는 아픔이 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주님. 그러할때에 우리 그 아픔을 아시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우리 주변에 그런 아픔이 있는 동물들, 아픔이 있는 이들, 아픔이 있는 이 지구를 하나님,  긍휼히 여길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 이 십자가의 여정은 많은 우리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그 고난의 여정 가운데 많은 군상들이 있었었고, 많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있었었고,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이 또한 있음을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뻥뻥 큰소리 치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베드로도 도망가고, 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멀리하고 다 자기 생명 지키기 위해서 도망갔을때 이름없이 갈릴리에서 주님을 섬기기위해 따라왔던 여인들, 한번도 주님의 좌편에 우편에라고 하는 그런 논쟁의 축에도 끼지 못했던 그 여인들은 멀리서 주님의 돌아가심을 고통당하심을 바라보며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주님 또한 오늘 말씀에 평상시 드러나지 못했던 부자사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당돌하게도 빌라도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고 자기가 자기의 장례를 위해 파두었던 새 무덤을 돌을 파서 만들었던 새 무덤에 주님을 모시는 것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언하기를 그도 예수의 제자라 하였습니다. 주님, 우리는 어떤 제자입니까. 주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주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 주님과 함께하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주님의 그런 제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결정적으로 필요할때 함께 있는 제자가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우리를 원하실때 그 자리에 있는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 마권사님 어제 병원에 가서 잘 치료받고 좋은 소식을 듣게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또한 오늘은 지*와 다*이가 한국으로 떠납니다. 주님께서 그 발걸음에 함께하여 주시고, 아이들 둘이 한국에 도착할때 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하나님 또한 한국에 도착해서 자가격리 2주의 기간동안 아이들 마음 가운데 평강을 허락하셔서 가족간에 다시 상봉의 기쁨이 있게하여 주시고 그곳에서 잘 보내다가 다시 만날수 있는 은총이 있도록 은혜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루 하루 여러가지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하나님 너무나 우리의 마음이 심란해지고 피곤해지고 고통스러워지고 걱정이 생기는 뉴스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 땅에 오셔서 고통을 친히 느끼셨던 주님께서 또 죽임당하셨던 주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소망으로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 가운데서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 하루 하루 이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고, 또한 특별히 오늘 저녁에 있을 성금요일  예배 함께 하셔서 우리 심령 가운데 주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