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시는 말씀 마가복음 15장1절로 15절 말씀입니다.
오늘 생명의 삶에는 ‘고발과 불법 재판, 침묵 속에 빛나는 순종”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본문 말씀 가운데 세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여기 오늘 말씀에 보시면 고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1절에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3절 말씀을 보니 “대제사장들이 여러가지로 고발하는지라” 11절 말씀을 보니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이렇게 나옵니다. 10절 말씀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재판을 받으실 이유도 없었고 조롱과 희롱을 당하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본인들이 갖고 있는 것을 뺏길까봐 본인들이 갖고 있는 권리를 놓칠까봐 본인들의 자리에 대해서 위협되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불편한 마음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며 그들 마음에 일어난 시기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 도전했던 주님의 말씀 때문에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죽여야되겠다 제거해야되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은 오늘 말씀을 보니 “새벽에” 아주 일찍부터 부지런을 떱니다. “즉시” 미루는 것도 없습니다.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결박하고 끌고 가서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고발하였습니다. 그 고발은 다 거짓된 고발이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충동하였습니다. 무리를 충동해서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여기 백성들이 나옵니다. 여기 말씀에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해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8절에 백성들의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합니다.” 전례대로 죄수 한명을 놓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두가지 옾션이 있었었죠. 하나는 여기 있는 말씀대로 7절에 보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라바와 예수님을 빌라도가 택일 하라고 얘기하죠. 그랬더니 11절에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해서” 그 충동함에 충동당하여 무리는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님은 13절에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여러분 우리가 군중심리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어도 지난번 그 설교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레밍증후군이라는 것도 있고 호모포비아 라는 것도 있고 여러분 아시다시피 2차 세계대전때 독일국민들이 정말로 뛰어난 지성인과 신학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에 선동해 또 히틀러와 그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충동하고 그들을 이끌었을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단외적 사고에 빠져서 군중심리에 빠져서 잘못을 잘못인줄 모르고 그렇게 했습니까. 여기 오늘 말씀에 보니 백성들이 어떻습니까. 무리가 되어 전례를 따라서 요구하는 것에 그들은 옳은 선택을 하지아니하고 잘못된 선택을 이렇게 잘못된 군중심리가 있을때 그 흐름을 바꾸는 이들이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좀 있다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번째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빌라도입니다. 빌라도가 10절에 보면 ”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넘겨준 줄 알았습니다” 다른 성경말씀을 보시면 오늘은 마가복음을 보지만 누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들을 종합해서 보시면 예수님이 죄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죄가 없는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놓아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무리의 소리가 이겼습니다. 충동된 무리가 군중이 크게 소리지르자 그는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15절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가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여러분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자기의 안위가 두려웠기 때문에 자기의 안위에 대한 위협으로써 예수님을 인식하였고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날까 겁이 나서 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어야되었던 그는 자기 안위가 걱정되어서 결국은 잘못된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죄가 없고 물에 손을 씻고 말죠. 그가 죄가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회에서 연구하는 여러가지 Abuse하는 , 권력을 남용하거나, 성적으로 Abuse 하거나, child abuse하거나 혹은 어떤 다른 사건들이 일어났을때 분석하는 여러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구경하지 말아라 speak up해라 누군가 한사람이 speak up하면 멈칫한다. 가해자가 남용자가 abuse하는 사람이 멈칫한다는 얘길 합니다. 유명한 사건이 있지않습니까? 한 도시에서 한 여성이 무참하게 살인되었는데 간밤에 사람들이 다 그것을 보고도 어느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 이후에 많은 심리학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서 그 심리들을 연구한 다음에 심리학자들이 권한것이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둘러쌓여서 어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잘못되게 때렸을때 구경하지 말고 누군가 한 사람이 speak up 하라고 손을 들고 그건 아니쟎아요 이건 아니쟎아요 라고 소리치라는 거죠. 그리고 나서 거기에 개입했을때 사람들이 다 구경하면 그냥 도와주세요 라고 하지말고 특별히 한사람을 지적하라는 거죠. 거기 빨간색 옷을 입은 아저씨 나 좀 도와주세요 거기 노란색 옷을 입은 아주머니 경찰에 전화 좀 해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하라고 하는 것이죠. 왜냐면 많은 군중이 있었을때 그들은 자기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하며 구경하는 구경꾼에 머물고 만다는 사실이었어요. 여러분 오늘 여기 말씀에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옳은 길을 가지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른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안에 의인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무리의 소리가 훨씬 더 이겼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구경꾼이 되었고 무리의 흐름에 묻혀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되겠습니까? 지난주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들 중 다수가 되지말고 그들 중 소수가 되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을때 그 정탐꾼 12명이 돌아왔습니다. 다 돌아와서 좋은 농산물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의 정탐꾼이 땅을 악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거인이고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얘기하고 모든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막 동요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신 이유가 여기서 죽게하시려고 이렇게 인도하셨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갈렙과 여호수가 손을 번쩍 들고 그렇지 않다고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나님이 함께 함시면 우리가 할수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분노하셨습니까. 여기 오늘 말씀을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다수가 될 것이냐. 거룩한 소수가 될 것이냐. 옳은 길을 따르는 소수가 될 것이냐. 여러분 선택하셔야 합니다. 여기 말씀에서 빌라도는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도 그 다수의 흐름에 결국 빠지고 말았습니다. 새벽에 했던 대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그 일을 주동하던 다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거기에 충동질 당하는 다수가 되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무엇을 선택하려느냐? 여러분 이 고난주간에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가신 옳은 길을 따라 바른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살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간다 할지라도 그 흐름을 바꿀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해져가고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뉴스를 보니 가정폭력도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가족끼리만 보내야되면 스트레스가 많아져서 그것을 가족에게 쏟아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흐름은 잘못된 길을 간다할지라도 우리는 바른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저와 여러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바같에는 비가 내리고 천둥소리도 들립니다. 빗방울이 떨어져서 흐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주님. 주님이 고난당하신 이 고난 주간에 저희가 이 새벽에 일어나 주님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하나님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처럼 되지않게 하여 주옵소서. 죄없는 주님을 고발하고 고소하고 조롱하고 끌고 왔던 그들처럼 되지않게 해주시고 또 하나님 어리석은 무리처럼 충동 당하여 군중심리에 빠져 주님을 다시 못박으라고 죄없는 분을 못박으라고 했던 그들과 같이 되지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빌라도는 어떻습니까. 그는 권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예수님이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고발당하고 죄없으신 분임을 앎에도 불고하고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옳은 선택이 아닌 자기에게 안위의 유리한 선택을 한 빌라도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하나님 이것이 그들만의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주님.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발견되어지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가운데 인간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착각하고 살았는지 다시 깨닫지 않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이 생명의 위협앞에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지 않습니까. 하나님 정말로 참된 신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참회록을 써간다고 몇번 설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진실로 우리 삶 가운데 우리의 부족한 점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고 내 안에 빌라도는 없는지 내 안에 그 무리는 없는지 내 안에 대제사장은 없는지를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이 시간 역사하셔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사 내 안에 있는 빌라도를 제거하게 하시고 내 안에 있는 어리석은 무리를 제거하게 하시며 내 안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 미련하고 시기심 가득한 대제사장을 제거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려 주시옵소서. 이제 주님 내일은 성 금요일입니다. 내일은 온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성 금요일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하나님 특별히 오늘 이 하루 동안에도 아버지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집안에 있을때 집 밖으로 나가서 위험을 감수해야되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또 하나님 아버지 Grocery worker들 동네를 치우는 사람들 환경미화원들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또 감옥에 있느 죄수들 social distance, physical distance를 실천하고 싶어도 실천할 수 없는 난민들 슬럼가에 사는 사람들 홈리스 사람들 주님이여 전세계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하나님 정말로 이 어려운 순간 가운데서도 정말로 영원하신 주님을 맛보며 영원한 신앙을 그들이 가질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성령님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성령님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성령님 우리를 고쳐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