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30일2021년 화요일 아침묵상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7:1~10절입니다. 생명의 삶에서 정한 제목은 ‘회개에 이르지 못한 후회, 이를 통한 말씀의 성취’ 입니다.
1절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아침이 밝아서 충분히 시간이 된 다음이 아니라 새벽부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함께 의논했습니다. 참으로 악한 일에 엄청난 부지런을 떨어서 새벽부터 이렇게 작당을 한 것입니다.
2~5절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도로 가져다 주고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 말하니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말하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 사이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버리고 부인하고 했는데 베드로는 그 일 이후에 주님께 회개하는 기회를 얻고 돌이킴을 얻었지만 유다는 스스로 목메어 죽었습니다.
이 부분을 본문 해설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데 머물면 안 되고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룟 유다를 위해서도 친구여 라고 얘기하셨고 그를 위하여 발을 씻겨 주시고 기도하셨던 주님이셨던 것을 기억하면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메어 죽을 것이 아니라 주앞에 나가서 회개하였으면 인정을 받았을텐데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미 대속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은총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7절에 그리고 나서 그들이 토기장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다
이방인들이나 낯선이들의 묘지를 삼았다는 뜻입니다. 얼추 들으면 좋은 일을 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본문 해설에서는 ‘겉으로는 나그네들을 위하는 선한 일인 듯하지만, 그들의 간악한 외식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일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고 하는 것입니다. 9절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완악한 대제사장 그들이 알지 못하고 행한 상황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죄로 인해 넘어졌을 때 후회에 그치지 않고 돌이켜 십자가로 향하게 하소서. 주님을 저버린 저를 여전히 기다리시는 그 사랑 앞에 눈물로 엎드립니다. 보혈로 죄를 씻어 주시고, 저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죄책감의 올무에서 벗어난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조정민 목사님이 쓰신 에세이 ‘왜 구원인가?’ 의 일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고 급한 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죄로부터 돌이키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죄사함을 통해 회복되는 것은 공동체 회복의 열쇠가 되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죄의식에 짓눌린 그릇된 선택이 아닌, 오직 죄 사함 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소망이 필요합니다. 부와 성공은 죄 사함의 복에 비하면 정말로 하챦은 것입니다.’
죄로부터 돌이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것이 회복되어지는 은총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참된 회개로 말미암아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고난 당하시고 새벽부터 끌려가셔서 고초당하신 주님의 그 고난이 우리를 위한 모든 대속의 은혜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욕당하고 때때로 고난 당할때에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주님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