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년28일2020년 아침묵상
사랑하는 알링턴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3월28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렇게 잡았습니다. ‘긍휼없는 삶을 넘어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모세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뭐라고 얘기했느냐 하니 27절 보니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너는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내가 마시게 하라 나는 걸어서 지날 뿐인즉 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사람이 내게 행한 것같이 하라 그리하면 내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하였으나” 여러분의 이해를 조금 더 돕기위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 지금 이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리들은 마치 시리아의 난민들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본인들이 살 수 있는 땅을 향해서 나는 피난민 들입니다.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이고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목가적 유목민이 아니라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향해서 피난 행렬을 지어서 가고 있는 난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나라없는 사람들이었고 이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만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헤스본 왕 시혼에게 헤스본이라는 땅을 지나가야 했을때에 그 헤스본 왕은 이 얘기를 듣고 모세가 달리 말하면 너희 국경을 좀 통과하게 해달라 우리가 너희에게 피해는 주지않고 우리가 그저 너희들에게 공짜로 먹지않고 우리가 물도 먹을것도 돈을 주고 사먹을테니 우리가 이 국경을 너네 땅을 지나서 우리의 약속받은 그 땅을 향해서 나아가게 해달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30절 말씀을 봤더니만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다”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헤스본 시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국경을 자기의 영토를 지나가게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난민의 행렬에 가까웠던 이스라엘 사람들 수십만의 난민을 오늘날에도 시리아의 난민들을 유럽 국가들에서 그들이 자기네 국경을 통과하게 하지않았던 국가들처럼 헤스본 왕 시혼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공짜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기 말씀에 있는 것처럼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내가 먹게하고 돈을 받고 물어주어 내가 마시게 하라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헤스본 왕 시혼은 아주 최소한의 자비와 긍휼도 베풀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원래 하나님의 계약과는 다르게 그들이 그렇게 강팍하고 무자비하고 긍휼없는 삶의 태도를 보이자 주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너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하시더니 ”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했습니까. 이랬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헤스본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다” 하였습니다.
여기 오늘 생명의 삶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진멸 전쟁을 명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납득하기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은 우리 생각보다 높습니다.’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가혹한 심판을 하셨을까. 여기 씌여있는 것처럼 ‘하지만 시혼은 애굽 왕 바로처럼 완고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이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국경을 완전히 봉쇄해서 그 난민들이 지나가도록 살아남지 못하도록 무자비한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다 걷지말고 이삭을 남겨둬라. 너희는 나그네를 기억하라. 달리 말하면 난민들 피난민들 Refuge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비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비없으심으로 그들에게 심판하셨습니다. 갚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를 긍휼없는 삶을 넘어서서 긍휼없는 삶이 아닌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마태복음 5장에 보면 팔복이 나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된다,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는 자가 되어야되고, 다른 사람을 불쌍이 여기는 자가 되어야되고, 온유한 자가 되어야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되고, 특별히 7절 말씀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 헤스본 왕 시혼과 헤스본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코로나 사태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도 보아서 알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무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긍휼히 여김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비가 메말라 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긍휼히 여기시지 않으시는 되갚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사태의 한복판을 지나고 계십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까. 아니면 헤스본 왕 시혼처럼 긍휼함이 없는 자비함이 없는 그런 마음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 알링턴 한인교회 성도 모두가 특별히 새벽기도를 사모하는 성도 모두가 긍휼없는 삶이 아니라 긍휼이 여기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은총을 입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참으로 힘겨운 코로나 사태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다른 사람을 향해서 부한 마음이 아니라 우리도 가난한 자와 같이 되어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저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도 애통하는 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는 자와 함께 울게 하여 주시고 지금 눈물뿌리며 죽어가는 이들 정말로 너무나 공포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간호사들. 그들과 함께 우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이 강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온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이 부드럽고 부드러워 하나님이여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마음에 온유함으로 가득한 저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나만 괜챦고 나의 가족만 괜챦고 나의 비지니스만 괜챦으면 괜챦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 모든 사람에게서 의에 목마른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긍휼이 여기는 자를 주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주님 헤스본 왕처럼 주님 긍휼함이 없고 자비함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진실로 진실로 아버지 하나님 긍휼함이 있고 자비함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진실로 이 세상 가운데 평화를 가져오는 화평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