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7 2020 아침묵상

03월27일 2020년 아침묵상

사랑하는 알링턴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도 좋은 아침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을 묵상한 후에 원래 제목과는 다르게 이렇게 제가 제목을 붙였습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란 제목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신명기 2장16절에서2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시냇가를 건넌 세렛 시내를 건넌 백성들은 그 다음에 모압 변경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말씀 18절에 봤더니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친척이 되었던 족속들의 땅에는 그들과 가서 싸우지 말라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려고 시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 생명의 삶에서는 이렇게 제목을 붙였지요. ‘서로 화평할 대상과 싸워 이길 대상을 분별하라” 그러나 제가 말씀을 더 묵상한 다음에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지말라고 하셨을까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먼 친척이 되는 그들의 삶 가운데에 행하셨던 일을 보게하심으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 오늘 말씀에 파란색으로 제가 하이라이트해 놓은 것을 보십시요. ‘내가 그것을 롯 자손 즉 암몬 족속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다른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땅을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암몬 자손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땅을 차지했습니까. 20절 말씀을 봤더니 그 땅 지금 암몬 족속이 살고 있는 그 땅은 원래는 르바임의 땅이라 했습니다. 왜냐면 르바임이라고 하는 그 사람들이 거기에 먼저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이름으로 삼숨밈이라고도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땠었느냐. 21절에 보니까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이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10명의 정탐꾼 그리고 갈렙과 여호수아, 이  12명이 그 땅을 정탐하고 왔을때 돌아온 그 12명 가운데 10명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 사람들 너무나 크고 너무나 거인이고 너무나 숫자가 강대하고 성은 너무나 견고하여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와 같다. 그들이 볼때는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라고 벌벌떨고 나가지 못하지않았습니까.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암몬 족속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가운데 그 컸던 르바임, 삼숨밈 마치 아낙 자손과 같이 강대했던 그들을 어떻게 했느냐. 그 암몬 족속이 이겼습니다.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서 거주하였다. 여러분 지금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앞에 지금 다가오고 있는 어마어마한 고난 어마어마한 고통의 물결이 얼마나 클지 사람들이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의 크기를 줄이고자 그 충격의 크기를 줄이고자 연방정부에서 주정부에서 시정부에서 그리고 각각의 기관들이 모든 단체들이 어떻게든 그 충격의 여파를 줄이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그 충격과 여파가 우리 마음에는 너무 너무 커보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낙 자손 앞에서 떨듯이 그들 거인들 앞에서 떨듯이 그렇지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오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이 아낙 자손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2절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 (호리 사람도 거인이었던거 같습니다) 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다” 하나님께서 단지 먼 민족의 친척이었던 그들과 단지 싸우지 말고 화평하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이미 증거를 보여주신 겁니다. 아무리 크고 강한 거인이 있다 할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하면 너가 능히 그 거인을 이길수 있으리라 말씀하시는 거죠. 23절 말씀을 또 보시지요.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려 거기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제 주님께서 마침내 말씀하십니다. 24절 “너희는 일어나” 가만히 있지말고 앉아있지 말고 미적거리지 말고 뒤로 물르지 말고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겁먹지 말고 건너라 “내가” 하나님 여호와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사흔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행동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5절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의 제목을 잡은 것처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거인이 우리를 보고 도로 겁을 먹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다시 읽어 보십니다.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입니까? 이제 더불어서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지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얘기하고 담대히 나갔던 갈렙과 같이 내 앞에 다가오는 거인과 같은 것이 보인다 할지라도 거기에 무서워 떠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될 일을 깨달아 일어나서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고 더불어 나아가서 싸우는 이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줄로 믿습니다.

오늘 특별히 생명의 삶 가운데 묵상 에세이 151쪽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감사의 7가지 언어’라는 오규훈이라고 하는 분이 쓴 책에 나오는 내용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비교했는데, 그 항목이 40여 가지에 달한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프로는 (잘 보십시요.) 기회가 오면 우선 잡고 보지만 아마추어는 생각만 하다가 기회를 놓친다. 프로는 뛰면서 생각하지만 아마추어는 생각하고 나서 뛴다. 프로는 행동을 보여 주고 아마추어는 말로 보여 준다. 프로는 놀때 최고로 즐겁게 놀지만 아마추어는 놀 줄 모른다. 프로는 해보겠다고 하지만 아마추어는 안 된다고 한다. 프로는 ‘지금 당장’을 좋아하지만 아마추어는 ‘나중에’를 좋아한다. 앞서 열거한 내용을 보면 프로는 미루거나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생각한 것을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신앙의 프로는 하나님 말씀을 즉시 실행에 옮긴다. 다시 시작한다는 고백은 결과보다 노력이나 시도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참된 믿음은 마음속의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여기 오늘 묵상에세이에서 오규현이라는 분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얘기하고 그 차이점을 얘기한 다음에 신앙인의 실천에 측면에 적용해서 그의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분의 글을 읽고 나서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프로였던 갈렙과 여호수아가 있었고 아마추어였던 10명의 정탐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같던 그들은 그 땅을 보고 왔지만 생각만 하다가 기회를 놓쳤고 생각하고 나서야 뛰려고 했고 말만 하였으며 그리고 안된다고 하였으며 나중에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어땠습니까. 기회가 오면 잡았습니다. 뛰면서 생각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고 했습니다. 미루거나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온 다음에 우리 가운데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될까 뒤로 무르고 가만히 구경하고 그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단체도 그렇고 너무 무리해서는 안되겠지만 우리가 지금 해야될 일은 우리가 해야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뛰면서 생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며 해보겠다고 하고 지금 당장에서 미루거나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여기 표를 보십시요. 많은 학자들이 하는 얘기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 곡선을 보시면 이렇게 많아졌다가 이렇게 줄어듭니다. 이것은 사람의 적응에 대해서 학자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을때 그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Early Adapter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빨리 무언가를 받아들입니다. 이건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Early Adapter인 사람들이 빨리 변화를 catch해서 그 사람들은 어떤 기술이든 시대의 흐름이든 빨리 catch합니다. 빨리 기회를 잡습니다. 그러고 이 사람 다음에 early까진 아니지만 그 다음 사람들 거기에 적응하는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빨리 받아들이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증명이 좀 된 다음에 이렇게 뭔가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기에 쳐지는 나머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뒤쳐져서 맨 앞이 Early Adapter라면 가장 늦은 가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catch하지 못해서 결국은 변화를 못읽고 뒤쳐지고 도태되는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 그거 아십니까.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때 Video, 영화를 대여하는 곳은 Netflix 라는 곳은 그때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Blockbuster라는 비디오를 대여해주는 큰 회사가 전국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Blockbuster가 어디 있습니까.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국 전역을 장악했던 Video, DVD ,영화 대여점이엇던 Blockbuster company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왜 망해버렸습니까. 변화를 읽지 못하고 안주해 버렸습니다. 그때 시대의 변화를 읽고 본인들이 빨리 맞춰서 새로운 전략을 짜서 작은 company 였지만 아주 창의적인 아주 선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지금 가장 선두에 있는 기업이 무엇입니까. Netflix라고 하는 기업입니다. 그 Netflix가 거대 공룡이었던 Blockbuster를 제치고 그들이 Early Adapter가 되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었습니다. 변화를 지각변동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Netflix는 가장 선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앞에 놓여 있는 큰 산지 큰 거인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취해야 할것이 무엇인지 빨리 깨닫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Netflix라는 회사가 변화를 빨리 읽어내고 그들이 해야될 일을 깨닫고 취해야 될 일을 취한 것 처럼 우리 앞에 놓여있는 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강을 건너가라 그리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실때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능히 거인을 이길수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지금 들려지는 이 찬양처럼 주님을 신뢰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서 말씀하신 산지로 향해서 나갈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 앞에 놓여져 있는 많은 큰 소식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두렵게하고 떨리게 하는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 산지를 향해서 나아가서 그 산지를 정복하고 이길수 있음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정복할 수 있음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여 주시고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붙잡아 주시기를 원하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